매일경제신문에서 민족사관고등학교에 대해 시리즈로 다룬 기사가 있어 정리하여 올려드립니다.
민사고, 암기형 vs 창의형 교육…서로 다른 인재로 커
해외대학 입시에 맞춰, 리더십ㆍ봉사활동 강화
독일인 교사 간제 씨가 민사고 국제반 학생들에게 세계사를 가르치고 있다. 이날 수업은 영어 토론으로 진행됐다. <이승환 기자>
독일인 교사 간제 씨는 민사고 국제반에서 세계사를 가르친다. 그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소재로 자유롭게 영어 토론을 하며 학생들이 스스로 배워가도록 가르친다. 국제반은 성적 외에 봉사활동 리더십교육 등을 통해 높은 아이비리그 진학률을 기록해 왔다. 성적 외에 잠재력까지 평가하는 외국 대학 진학을 원하는 학생들은 오히려 사교육 의존도가 낮다. 토론식 수업과 잠재력을 키워주는 민사고의 교육방식이 주목받는 이유다.
지난달 27일 오후 1시 민사고 충무관 1층에서는 고3 민족반(국내대학 진학반) 학생들 18명이 유동훈 국사선생님의 수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단발령, 중요하죠. 을사조약은 을사늑약이라고도 하죠." 학생들은 교과서에 색색의 필기구로 줄을 그었다. 선생님은 내신에 반영되는 범위가 적힌 유인물을 나눠준다. 일반 학교의 수업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같은 시간, 옆 방에서는 독일인 간제 선생님이 세계사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영화 `쉰들러리스트`를 소재로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토론했다. 10명 남짓한 국제반(해외대학 진학반) 학생들에게 던져진 질문은 왜 쉰들러가 고통을 당했느냐는 것이다. 선생님은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영어로 발표할 수 있게 상황만 제공한다. 수업을 채워나가는 건 학생들의 몫이다. 이처럼 민사고의 국제반과 민족반은 커리큘럼이나 수업 내용ㆍ방식이 모두 다르다.
국제반 수업은 3단계를 목표로 한다. 첫째는 강의다. 이는 선생님은 가르치고 아이들은 배우는 과정이다. 둘째는 토론이다. 학생들은 배운 것을 그 자리에서 토론하고 의견을 교환하고 이에 따른 피드백을 받는다. 셋째는 작문이다. 자신이 느낀 것을 `말`로 표현했다면 `글`로 적어서 남기고 정리하고 과제로 제출한다.
이와 달리 민족반의 수업은 선생님은 가르치고 아이들은 배우는 1단계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나종욱 교무부장은 "고3이 되면 민족반에서는 이런 3단계 수업이 사실상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민사고의 모든 수업은 1학년 2학기부터 학생들이 수업계획서를 제출하면서 시작된다. 학생들은 공통교과를 배우는 1학년 1학기를 제외하고는 선택과 집중을 한다. 전부 본인의 자율에 맡긴다.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과목을 듣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공부하고 싶은 것을 골라 스스로 공부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민족반과 국제반은 수업 내용이나 방식뿐 아니라 공부하는 폭도 다르다. 민족반은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이과와 문과로 나뉘어 공부를 하는 반면, 국제반은 이과ㆍ문과의 영역을 나누지 않는다. 국제로봇올림피아드에서 입상한 국제반 한예나 양은 "민사고를 진학한 계기가 이과와 문과,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두 가지를 모두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교육 과정과 방식이 다르다 보니 민사고에서 3년을 보낸 학생들의 학습 성향이나 성취도가 국제반과 민족반 사이에 큰 차이가 난다. 민족반 아이들이 배운 것을 암기하는 데 뛰어난 `스펀지형 인재`라면 국제반 아이들은 배운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이를 적극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분수형 인재`로 성장하는 것이다.
국제반과 민족반의 차이가 커지다 보니 민사고는 2008학년도부터 이를 구분하지 않고 `무계열 개방형 입학`으로 바꾸고 최종적인 계열은 3학년이 돼야 구분하고 있다.
나병률 민사고 부교장은 "민족반으로 뽑힌 아이들도 모두 머리가 좋고 뛰어나 높은 점수를 딴다"며 "하지만 국제반과 비교해 보면 아이들이 많은 것을 놓친 채 대학수학능력시험에만 매달리게 되는 것을 보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무계열로 바꿨다"고 털어놓았다.
들어올 때는 여건이 비슷하더라도 민족반은 상대적으로 수능 점수라는 목표를 향해 깊이 없는 공부를 하는 반면, 국제반은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나 부교장은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사실상 지배하는 대학입시제도 자체가 개선되지 않는 한 막을 수 없는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민족반과 국제반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국내의 대입제도와 해외의 대입제도의 차이 때문이다. 민사고 국제반의 경우 학업 성적 자체가 해외대학 합격을 절대적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능력만 되면 외국 대학은 자격 요건을 갖춘 것으로 판단하고 리더십 훈련, 봉사활동, 과외 활동을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청 민사고 사무국장은 "대학에서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발할 기회가 더 확대되어 점수 위주가 아닌 리더십을 갖춘 인재를 선발할 수 있어야 사교육이 줄어들고 공교육도 정상화되는 `선순환 효과`가 온다"고 강조했다. 민사고는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면서 올해 실제로 민족반 45명 중 서울대에 19명이 갔다. 이 중 수시합격이 18명으로 90%가 넘는다. 대학입시 자율화가 본격화되면서 가능한 일이었다.
민사고 교장을 지낸 이돈희 전 교육부 장관은 "민사고 모델을 우리 공교육에 바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면서도 "다만 학생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또 토론식 수업 등은 벤치마킹할 만하다"고 말했다.
민사고 졸업생, 해외 명문大진학 300여명
졸업생 배출 10년의 기록
1996년 첫 입학생을 받고 1999년 첫 졸업생을 배출한 민족사관고등학교에는 지금까지 1428명이 입학하고 845명이 졸업했다. 입학생과 졸업생의 차이가 583명이다. 이중 재학생을 제외하면 129명이 중간에 민사고를 떠났다.
이는 기본적으로 내신을 중요시하는 우리나라의 대학입시 제도 때문이다. 막상 민사고에 입학했으나 내신의 벽 때문에 명문대 진학의 꿈이 막힌 학생들이 다른 학교로 옮겨간 것이다.
민사고 1회의 경우도 30명이 입학했으나 졸업을 한 학생은 11명에 불과하다. 19명이 대학입시를 위해 학교를 떠났다. 민사고가 해외 명문대학 입학에 눈을 돌린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민사고 교장을 지낸 이돈희 전 교육부 장관은 "다른 고등학교에 갔으면 대부분 서울대를 갈 학생들이었는데 내신의 벽 때문에 그게 어려워지자 민사고를 오려는 학생들이 줄어들었다"며 "그래서 4회 입학생부터 전략적으로 해외진학반을 운영했다"고 말했다.
이는 해외 진학 실적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1~3회 졸업생 중 해외 대학에 진학한 학생은 각각 2명, 3명, 8명이었으나 4회 졸업생부터는 14명으로 늘었다. 이후 해외 대학에 입학한 학생은 해마다 증가해 2007년에는 83명이 해외 대학에 진학하는 등 지금까지 300여 명이 해외로 나갔다. 대부분 미국 아이비리그 등 명문대학에 입학했다. 이런 성과는 미국인들의 눈에도 놀라운 것이었다.
민족사관고 관계자는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는 세계 최고의 대학에 합격하는 일보다 국내 명문대에 진학하는 일이 더욱 어려운 일"이라며 "이는 우리의 입시제도가 잘못됐다는 증거 아니냐"고 물었다.
민사고 졸업생, 의사·법조인보다 기업·연구소 진출 많아
모범생보다 창의적 괴짜들 배출해…자립형 사립고 역할모델 자리매김
지난달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공교육 정상화`를 주제로 한 국무회의에서 `민사고 모델`이 화제가 됐다. 정진곤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은 "민사고의 교육 결과를 보면 해외진학반 학생들이 보다 창의적인 인재로 성장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이 같은 모델이 우리 공교육 정상화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족사관고가 올해로 졸업생을 배출한 지 10년이 됐다. `1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지도자로 육성한다`는 목표 아래 교육을 받은 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1999년 2월 강원도 횡성의 민족사관고는 1회 졸업생 11명을 배출했다. 이들은 그해 3월 2일 대학에 입학했다.
사회 진출을 시작한 민사고 1~3회 졸업생의 현재를 전수조사를 통해 알아봤다. 1~3회 졸업생 67명 중 연락이 안 되는 2명을 제외한 65명의 현재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들 중 국내외 대학에서 석ㆍ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17명과 군복무 중(4명)이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1명)을 제외한 43명이 사회에 진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사고는 1호 `자립형 사립고`다. 지난 10년간 민사고가 보여준 성과는 우리 교육 현실의 문제점과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민사고는 이후 설립된 자립형 사립고의 역할모델이 됐고 또 민사고가 해외 대학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자 대입제도의 벽에 막힌 대원외고 등 다른 학교도 이를 따랐다.
1기 졸업생 중 한 명인 김성진 씨는 1999년 3월 2일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구미가 고향인 김씨는 "민족 지도자 양성이라는 모토가 마음에 들었고 학비도 전액 면제라고 해서 민사고를 택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2002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지난해 공군장교로 군 복무를 마치고 올해 1월 초부터 금융위원회 사무관으로 일하고 있다. 김씨에게 민사고를 나오기를 잘했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지를 물었다.
그는 "영어로 수업을 하다 보니 영어에 능숙하게 됐고 또 무엇보다 스스로 찾아서 공부할 수 있는 자세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1기 졸업생 사이에서 "공부도 잘했고 운동도 잘했고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 같았던 친구"로 기억되는 김광호 씨는 경찰대를 졸업하고 현재 경찰청에서 근무하고 있다.
3회 졸업생으로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던 박영수 씨는 현재 공중보건의로 일하고 있다. 그는 평범한 의사의 길을 가기를 거부하고 있다. 마음속에 품은 꿈 때문이다. 그는 "환자를 보는 의사도 보람 있지만 사회 전체적인 의료시스템을 고치는 보건학이나 국제보건센터 같은 쪽에 관심이 더 많고 이를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 매일 새벽 6시 30분에 체조 끝나고 1교시 시작 전에 `출세를 위한 공부를 하지 말고 학문을 위한 공부를 하자`고 매일 제창했다"며 "그때는 귀찮고 의미 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뇌리에 박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힘 있는 사람을 많이 배출한 학교보다는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정책을 만들고 사회발전을 가져오는 학문을 하는 사람들을 배출한 학교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문지성 씨는 SK에너지 R&M 전략기획팀에서 해외 자원개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4년째 해외 자원개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문씨는 지난해 중동 등지의 자원개발 사전검토서를 작성한 적이 있다. 이전 조사가 전무한 `백지상태`에서 떨어진 오더라 당황했지만, 어렵지 않게 사전검토서를 만들 수 있었다. 문씨는 "학교 다닐 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토론수업을 하고 자율적인 학습 분위기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게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신상희 씨는 서울대 기계공학부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대자동차에서 하이브리드자동차를 개발하고 있다.
이들은 각자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어떤 미래를 꿈꾸냐는 질문에 대부분 비슷한 대답을 했다. "민사고 졸업생으로서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의무감으로 자리잡고 있고 또 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졸업 후 10년간 `민사고`를 나왔다고 하면 "똑똑할 것"이라거나 "엘리트일 것"이라는 시선에 시달려 왔지만, "엘리트보다는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성을 발휘하고 있는 `괴짜`일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문지성 씨는 "학교 다닐 때 `나 혼자가 아닌 1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지도자가 돼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지금은 조직에서 내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분위기를 이끄는 것으로도 이미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신상희 씨는 "대학교 1~2학년 때만 해도 `의사가 돼서 돈을 많이 벌겠다`는 유의 얘기를 하는 친구가 있으면 `왕따`가 될 정도였지만, 지금은 각자의 자아실현을 통해 사회에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생각을 갖고 있는 정도"라고 말했다.
2기 졸업생 고덕수 씨(28)는 카이스트 산업경영학과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후 교보AXA자산운용 인덱스운용팀에서 일하고 있다.
고씨는 "모두 고향에서 1등 하던 친구들과 공부하면서 `누군가의 우위에 서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것을 배운 것 같다"며 "진정한 리더십은 우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는 겸손함을 배운 게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민사고 아이들이 말하는 `민사고`
새벽 6시에 일어나 검도로 아침잠을 깨고 국궁으로 정신력을 다진다. 쉬는 시간에도 영어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새벽 2시 강제 취침 이후에도 급속 충전이 되는 랜턴을 켜 놓고 `도둑 공부`도 해봤다는 공부 벌레들. "공부하고 싶은 이에게는 천국, 공부하기 싫은 이에게는 지옥"이라는 표어가 딱 맞아 떨어지는 곳. 하지만 생활의 1/4은 각종 봉사 활동들로 수놓아지는 곳. 방문한 낯선 이들에게 먼저 "안녕하세요 "라며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인사를 올리는 학생들이 있는 곳. 올해 대학에 합격한 민사고 두 학생의 3년간 `횡성 생활`을 들어봤다.
◆코넬 공대 합격한 백두산 군
백두산 군(19)은 올해 코넬 대학 공대에 합격했다. 영어 활용 수업이 많아 자연스럽게 환경이 조성된 것이 해외 대학에 진학하는데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 "어느 순간 `이게 한국어로 뭐지` 이러면서 영어가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고요" 고3 때는 학원은 안 다니고 스스로 문제를 풀고 공부를 했다. "방학 때 학원도 다녀보고 했는데 한계가 있다고 느꼈어요. 영어 실력이 진정으로 업그레이드 되려면 제 자신이 감을 익히는 수 밖에 없더라고요" 백 군은 400쪽이 넘는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를 한 학기에만 3~4번씩 읽어나갔다. 문장은 어려웠지만 독파하면서 성취감과 희열을 느꼈다. 그는 영문학 고전을 원서로 완독한 시간을 자칫 팍팍할 수 있는 고교 시절의 `활력소`라고 추억했다.
컴퓨터도 즐긴다. 컴퓨터 언어인 자바(JAVA)를 11명의 팀원들이 서로 배우는 과정에서 공대생의 정체성을 기르게 됐다. 백 군은 "6~7시간씩 꼼짝 않고 앉아서 프로그래밍을 하고 논리적으로 식을 짜고 마침내 구현이 될 때 그 쾌감은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20*20 행렬식을 계산하는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그 원리를 나중에 수학 방정식을 푸는데도 응용했다. 그는 "학문의 원리는 서로 통해 있음을 깨달았고 끊임없는 과제 수행을 통해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어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화학을 좋아하는 백 군은 `Chemistry`라는 단어에 끌려 공대를 진학하게 됐다. "화학이 다른 사람과의 공감대를 의미하기도 하잖아요" 공부만 들입다 했어도 모자랄 시간에 그는 또래 상담 동아리 `속삭임`에서 활동했다. 신입생들이 들어오면 심리 상담을 해주고 고민이 있으면 들어줬다. 졸업생이나 신입생들의 성향을 분석하는 프로젝트도 했다. 누구보다 뛰어난 수재들이 모여 있는 이 곳에서도 학생들은 학업보다도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전원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다보니 `작은 사회`나 다름 없었다. "사실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부딪히는 건데 어떻게 서로 관계를 맺어야 할지 처음에 다 어려워해요. 하지만 저희는 자립심과 공존하는 법 모두를 배웠다고 자부해요" 백 군은 11학년(고2) 때 선후배 스터디 프로그램에서는 멘토로 활동하며 화학, 수학, 컴퓨터를 가르쳤다. "제 공부 시간 뺏긴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배웠던 것을 가르치면서 한 번 더 정리되니까 오히려 도움받은 거죠"
백두산 군은 알찬 커리큘럼도 소중하지만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돌아볼 기회를 얻은 것, 의지하고 지낼 선후배와 친구들을 가장 큰 수확으로 생각한다. "사교육에 물들지 않아서 좋고 서로 끈끈하게 지켜주는 우정이 있어서 기뻐요" "1:1 매칭 선배가 있고 마주 보는 방이 매칭방이라 잘 지내요. 1달에 1번 빼고는 주말엔 기숙사에서 공부하고 애들이랑 원주로 원정 가기도 하고 휴게소에서 가락 국수도 사먹구요"
그는 대학원에서 공학과 접목시킬 수 있는 경영학이나 교육학을 배우고 싶다. "공학이 학문적으로만 머무는게 아니라 사회에 이바지 하려면 경영 전략적인 마인드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예요" 교육학을 배우려는 까닭은 고민 상담을 하면서 능력이 있는 인재를 바르게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배운 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고 모두에게 플러스(+)가 되고 싶어요"
◆서울대 생명과학과 합격한 왕가온소래 양
가운뎃소리, 중심이 되는 소리라는 뜻을 가진 이름의 왕가온소래 양은 생물 과목 하나에 `올인`했다. 수강신청 제도 덕분에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민족반이긴 했지만 생물을 심화(in-depth) 과정으로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들을 수 있거든요. 이런 과목 듣고 싶은데 개설해줬으면 좋겠다고 하면 선생님께서 강좌를 열어주세요" 민사고 과정 중에 특별히 갖춰진 IR(Individual Research) 시간을 적극 활용한 결과였다. 생물의 경우는 4~5명, 영화 감상과 비판적 글쓰기도 학생들의 요청으로 20명 정원으로 열렸다.
11학년(고 2)때도 입시 위주로 공부한 것은 아니었다. 세계 지리나 AP Chemistry 등도 자유롭게 신청해서 수강했다. 12학년에 가서는 경시대회와 수시모집, 수능공부를 병행했다. 면접 준비도 같은 목표를 가진 친구들과 짝을 이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수학은 선생님 2분이 번갈아가면서 실전 면접 준비를 해주셨다. 일본 공대 입학 문제나 서울대 신입생들이 보는 학력 평가 문제 중 어려운 문제를 한 시간에 2~3개씩 몇 분 정도 칠판에 직접 나와서 풀어봤다. 아이들과 선생님이 면접 보는 교수님 역할을 했다. 추가 질문에 대응하는 모의 면접을 수 차례 치뤘다. 왕 양은 10월 중에 본 카이스트와 연세대, 11월 말에 본 서울대 3개 대학에 모두 붙었다. 같이 공부한 친구들도 모두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는 쾌거를 이뤘다. 생물 공부가 너무 좋아 동아리도 `metamorphosis`(변이)라는 생물 동아리를 들었다는 왕 양의 목소리는 생물 이야기를 하는 내내 들떠 있었다. "애벌레에서 나비가 되는 과정을 이를 때 흔히 이 말을 써요" 그녀는 "작년 여름 민족제(교내 축제)때 환경에 관련된 독립 영화 상영회를 열었던 것이 학창 시절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될 것 같다"며 "원하는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재량권이 주어져서 한없이 행복했다"고 말했다.
[서유진 기자]
민사고, 암기형 vs 창의형 교육…서로 다른 인재로 커
해외대학 입시에 맞춰, 리더십ㆍ봉사활동 강화
독일인 교사 간제 씨가 민사고 국제반 학생들에게 세계사를 가르치고 있다. 이날 수업은 영어 토론으로 진행됐다. <이승환 기자>
독일인 교사 간제 씨는 민사고 국제반에서 세계사를 가르친다. 그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소재로 자유롭게 영어 토론을 하며 학생들이 스스로 배워가도록 가르친다. 국제반은 성적 외에 봉사활동 리더십교육 등을 통해 높은 아이비리그 진학률을 기록해 왔다. 성적 외에 잠재력까지 평가하는 외국 대학 진학을 원하는 학생들은 오히려 사교육 의존도가 낮다. 토론식 수업과 잠재력을 키워주는 민사고의 교육방식이 주목받는 이유다.
지난달 27일 오후 1시 민사고 충무관 1층에서는 고3 민족반(국내대학 진학반) 학생들 18명이 유동훈 국사선생님의 수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단발령, 중요하죠. 을사조약은 을사늑약이라고도 하죠." 학생들은 교과서에 색색의 필기구로 줄을 그었다. 선생님은 내신에 반영되는 범위가 적힌 유인물을 나눠준다. 일반 학교의 수업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같은 시간, 옆 방에서는 독일인 간제 선생님이 세계사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영화 `쉰들러리스트`를 소재로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토론했다. 10명 남짓한 국제반(해외대학 진학반) 학생들에게 던져진 질문은 왜 쉰들러가 고통을 당했느냐는 것이다. 선생님은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영어로 발표할 수 있게 상황만 제공한다. 수업을 채워나가는 건 학생들의 몫이다. 이처럼 민사고의 국제반과 민족반은 커리큘럼이나 수업 내용ㆍ방식이 모두 다르다.
국제반 수업은 3단계를 목표로 한다. 첫째는 강의다. 이는 선생님은 가르치고 아이들은 배우는 과정이다. 둘째는 토론이다. 학생들은 배운 것을 그 자리에서 토론하고 의견을 교환하고 이에 따른 피드백을 받는다. 셋째는 작문이다. 자신이 느낀 것을 `말`로 표현했다면 `글`로 적어서 남기고 정리하고 과제로 제출한다.
이와 달리 민족반의 수업은 선생님은 가르치고 아이들은 배우는 1단계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나종욱 교무부장은 "고3이 되면 민족반에서는 이런 3단계 수업이 사실상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민사고의 모든 수업은 1학년 2학기부터 학생들이 수업계획서를 제출하면서 시작된다. 학생들은 공통교과를 배우는 1학년 1학기를 제외하고는 선택과 집중을 한다. 전부 본인의 자율에 맡긴다.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과목을 듣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공부하고 싶은 것을 골라 스스로 공부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민족반과 국제반은 수업 내용이나 방식뿐 아니라 공부하는 폭도 다르다. 민족반은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이과와 문과로 나뉘어 공부를 하는 반면, 국제반은 이과ㆍ문과의 영역을 나누지 않는다. 국제로봇올림피아드에서 입상한 국제반 한예나 양은 "민사고를 진학한 계기가 이과와 문과,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두 가지를 모두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교육 과정과 방식이 다르다 보니 민사고에서 3년을 보낸 학생들의 학습 성향이나 성취도가 국제반과 민족반 사이에 큰 차이가 난다. 민족반 아이들이 배운 것을 암기하는 데 뛰어난 `스펀지형 인재`라면 국제반 아이들은 배운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이를 적극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분수형 인재`로 성장하는 것이다.
국제반과 민족반의 차이가 커지다 보니 민사고는 2008학년도부터 이를 구분하지 않고 `무계열 개방형 입학`으로 바꾸고 최종적인 계열은 3학년이 돼야 구분하고 있다.
나병률 민사고 부교장은 "민족반으로 뽑힌 아이들도 모두 머리가 좋고 뛰어나 높은 점수를 딴다"며 "하지만 국제반과 비교해 보면 아이들이 많은 것을 놓친 채 대학수학능력시험에만 매달리게 되는 것을 보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무계열로 바꿨다"고 털어놓았다.
들어올 때는 여건이 비슷하더라도 민족반은 상대적으로 수능 점수라는 목표를 향해 깊이 없는 공부를 하는 반면, 국제반은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나 부교장은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사실상 지배하는 대학입시제도 자체가 개선되지 않는 한 막을 수 없는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민족반과 국제반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국내의 대입제도와 해외의 대입제도의 차이 때문이다. 민사고 국제반의 경우 학업 성적 자체가 해외대학 합격을 절대적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능력만 되면 외국 대학은 자격 요건을 갖춘 것으로 판단하고 리더십 훈련, 봉사활동, 과외 활동을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청 민사고 사무국장은 "대학에서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발할 기회가 더 확대되어 점수 위주가 아닌 리더십을 갖춘 인재를 선발할 수 있어야 사교육이 줄어들고 공교육도 정상화되는 `선순환 효과`가 온다"고 강조했다. 민사고는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면서 올해 실제로 민족반 45명 중 서울대에 19명이 갔다. 이 중 수시합격이 18명으로 90%가 넘는다. 대학입시 자율화가 본격화되면서 가능한 일이었다.
민사고 교장을 지낸 이돈희 전 교육부 장관은 "민사고 모델을 우리 공교육에 바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면서도 "다만 학생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또 토론식 수업 등은 벤치마킹할 만하다"고 말했다.
민사고 졸업생, 해외 명문大진학 300여명
졸업생 배출 10년의 기록
1996년 첫 입학생을 받고 1999년 첫 졸업생을 배출한 민족사관고등학교에는 지금까지 1428명이 입학하고 845명이 졸업했다. 입학생과 졸업생의 차이가 583명이다. 이중 재학생을 제외하면 129명이 중간에 민사고를 떠났다.
이는 기본적으로 내신을 중요시하는 우리나라의 대학입시 제도 때문이다. 막상 민사고에 입학했으나 내신의 벽 때문에 명문대 진학의 꿈이 막힌 학생들이 다른 학교로 옮겨간 것이다.
민사고 1회의 경우도 30명이 입학했으나 졸업을 한 학생은 11명에 불과하다. 19명이 대학입시를 위해 학교를 떠났다. 민사고가 해외 명문대학 입학에 눈을 돌린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민사고 교장을 지낸 이돈희 전 교육부 장관은 "다른 고등학교에 갔으면 대부분 서울대를 갈 학생들이었는데 내신의 벽 때문에 그게 어려워지자 민사고를 오려는 학생들이 줄어들었다"며 "그래서 4회 입학생부터 전략적으로 해외진학반을 운영했다"고 말했다.
이는 해외 진학 실적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1~3회 졸업생 중 해외 대학에 진학한 학생은 각각 2명, 3명, 8명이었으나 4회 졸업생부터는 14명으로 늘었다. 이후 해외 대학에 입학한 학생은 해마다 증가해 2007년에는 83명이 해외 대학에 진학하는 등 지금까지 300여 명이 해외로 나갔다. 대부분 미국 아이비리그 등 명문대학에 입학했다. 이런 성과는 미국인들의 눈에도 놀라운 것이었다.
민족사관고 관계자는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는 세계 최고의 대학에 합격하는 일보다 국내 명문대에 진학하는 일이 더욱 어려운 일"이라며 "이는 우리의 입시제도가 잘못됐다는 증거 아니냐"고 물었다.
민사고 졸업생, 의사·법조인보다 기업·연구소 진출 많아
모범생보다 창의적 괴짜들 배출해…자립형 사립고 역할모델 자리매김
지난달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공교육 정상화`를 주제로 한 국무회의에서 `민사고 모델`이 화제가 됐다. 정진곤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은 "민사고의 교육 결과를 보면 해외진학반 학생들이 보다 창의적인 인재로 성장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이 같은 모델이 우리 공교육 정상화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족사관고가 올해로 졸업생을 배출한 지 10년이 됐다. `1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지도자로 육성한다`는 목표 아래 교육을 받은 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1999년 2월 강원도 횡성의 민족사관고는 1회 졸업생 11명을 배출했다. 이들은 그해 3월 2일 대학에 입학했다.
사회 진출을 시작한 민사고 1~3회 졸업생의 현재를 전수조사를 통해 알아봤다. 1~3회 졸업생 67명 중 연락이 안 되는 2명을 제외한 65명의 현재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들 중 국내외 대학에서 석ㆍ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17명과 군복무 중(4명)이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1명)을 제외한 43명이 사회에 진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사고는 1호 `자립형 사립고`다. 지난 10년간 민사고가 보여준 성과는 우리 교육 현실의 문제점과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민사고는 이후 설립된 자립형 사립고의 역할모델이 됐고 또 민사고가 해외 대학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자 대입제도의 벽에 막힌 대원외고 등 다른 학교도 이를 따랐다.
1기 졸업생 중 한 명인 김성진 씨는 1999년 3월 2일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구미가 고향인 김씨는 "민족 지도자 양성이라는 모토가 마음에 들었고 학비도 전액 면제라고 해서 민사고를 택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2002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지난해 공군장교로 군 복무를 마치고 올해 1월 초부터 금융위원회 사무관으로 일하고 있다. 김씨에게 민사고를 나오기를 잘했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지를 물었다.
그는 "영어로 수업을 하다 보니 영어에 능숙하게 됐고 또 무엇보다 스스로 찾아서 공부할 수 있는 자세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1기 졸업생 사이에서 "공부도 잘했고 운동도 잘했고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 같았던 친구"로 기억되는 김광호 씨는 경찰대를 졸업하고 현재 경찰청에서 근무하고 있다.
3회 졸업생으로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던 박영수 씨는 현재 공중보건의로 일하고 있다. 그는 평범한 의사의 길을 가기를 거부하고 있다. 마음속에 품은 꿈 때문이다. 그는 "환자를 보는 의사도 보람 있지만 사회 전체적인 의료시스템을 고치는 보건학이나 국제보건센터 같은 쪽에 관심이 더 많고 이를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 매일 새벽 6시 30분에 체조 끝나고 1교시 시작 전에 `출세를 위한 공부를 하지 말고 학문을 위한 공부를 하자`고 매일 제창했다"며 "그때는 귀찮고 의미 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뇌리에 박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힘 있는 사람을 많이 배출한 학교보다는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정책을 만들고 사회발전을 가져오는 학문을 하는 사람들을 배출한 학교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문지성 씨는 SK에너지 R&M 전략기획팀에서 해외 자원개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4년째 해외 자원개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문씨는 지난해 중동 등지의 자원개발 사전검토서를 작성한 적이 있다. 이전 조사가 전무한 `백지상태`에서 떨어진 오더라 당황했지만, 어렵지 않게 사전검토서를 만들 수 있었다. 문씨는 "학교 다닐 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토론수업을 하고 자율적인 학습 분위기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게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신상희 씨는 서울대 기계공학부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대자동차에서 하이브리드자동차를 개발하고 있다.
이들은 각자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어떤 미래를 꿈꾸냐는 질문에 대부분 비슷한 대답을 했다. "민사고 졸업생으로서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의무감으로 자리잡고 있고 또 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졸업 후 10년간 `민사고`를 나왔다고 하면 "똑똑할 것"이라거나 "엘리트일 것"이라는 시선에 시달려 왔지만, "엘리트보다는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성을 발휘하고 있는 `괴짜`일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문지성 씨는 "학교 다닐 때 `나 혼자가 아닌 1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지도자가 돼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지금은 조직에서 내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분위기를 이끄는 것으로도 이미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신상희 씨는 "대학교 1~2학년 때만 해도 `의사가 돼서 돈을 많이 벌겠다`는 유의 얘기를 하는 친구가 있으면 `왕따`가 될 정도였지만, 지금은 각자의 자아실현을 통해 사회에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생각을 갖고 있는 정도"라고 말했다.
2기 졸업생 고덕수 씨(28)는 카이스트 산업경영학과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후 교보AXA자산운용 인덱스운용팀에서 일하고 있다.
고씨는 "모두 고향에서 1등 하던 친구들과 공부하면서 `누군가의 우위에 서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것을 배운 것 같다"며 "진정한 리더십은 우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는 겸손함을 배운 게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민사고 아이들이 말하는 `민사고`
새벽 6시에 일어나 검도로 아침잠을 깨고 국궁으로 정신력을 다진다. 쉬는 시간에도 영어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새벽 2시 강제 취침 이후에도 급속 충전이 되는 랜턴을 켜 놓고 `도둑 공부`도 해봤다는 공부 벌레들. "공부하고 싶은 이에게는 천국, 공부하기 싫은 이에게는 지옥"이라는 표어가 딱 맞아 떨어지는 곳. 하지만 생활의 1/4은 각종 봉사 활동들로 수놓아지는 곳. 방문한 낯선 이들에게 먼저 "안녕하세요 "라며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인사를 올리는 학생들이 있는 곳. 올해 대학에 합격한 민사고 두 학생의 3년간 `횡성 생활`을 들어봤다.
◆코넬 공대 합격한 백두산 군
백두산 군(19)은 올해 코넬 대학 공대에 합격했다. 영어 활용 수업이 많아 자연스럽게 환경이 조성된 것이 해외 대학에 진학하는데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 "어느 순간 `이게 한국어로 뭐지` 이러면서 영어가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고요" 고3 때는 학원은 안 다니고 스스로 문제를 풀고 공부를 했다. "방학 때 학원도 다녀보고 했는데 한계가 있다고 느꼈어요. 영어 실력이 진정으로 업그레이드 되려면 제 자신이 감을 익히는 수 밖에 없더라고요" 백 군은 400쪽이 넘는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를 한 학기에만 3~4번씩 읽어나갔다. 문장은 어려웠지만 독파하면서 성취감과 희열을 느꼈다. 그는 영문학 고전을 원서로 완독한 시간을 자칫 팍팍할 수 있는 고교 시절의 `활력소`라고 추억했다.
컴퓨터도 즐긴다. 컴퓨터 언어인 자바(JAVA)를 11명의 팀원들이 서로 배우는 과정에서 공대생의 정체성을 기르게 됐다. 백 군은 "6~7시간씩 꼼짝 않고 앉아서 프로그래밍을 하고 논리적으로 식을 짜고 마침내 구현이 될 때 그 쾌감은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20*20 행렬식을 계산하는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그 원리를 나중에 수학 방정식을 푸는데도 응용했다. 그는 "학문의 원리는 서로 통해 있음을 깨달았고 끊임없는 과제 수행을 통해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어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화학을 좋아하는 백 군은 `Chemistry`라는 단어에 끌려 공대를 진학하게 됐다. "화학이 다른 사람과의 공감대를 의미하기도 하잖아요" 공부만 들입다 했어도 모자랄 시간에 그는 또래 상담 동아리 `속삭임`에서 활동했다. 신입생들이 들어오면 심리 상담을 해주고 고민이 있으면 들어줬다. 졸업생이나 신입생들의 성향을 분석하는 프로젝트도 했다. 누구보다 뛰어난 수재들이 모여 있는 이 곳에서도 학생들은 학업보다도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전원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다보니 `작은 사회`나 다름 없었다. "사실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부딪히는 건데 어떻게 서로 관계를 맺어야 할지 처음에 다 어려워해요. 하지만 저희는 자립심과 공존하는 법 모두를 배웠다고 자부해요" 백 군은 11학년(고2) 때 선후배 스터디 프로그램에서는 멘토로 활동하며 화학, 수학, 컴퓨터를 가르쳤다. "제 공부 시간 뺏긴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배웠던 것을 가르치면서 한 번 더 정리되니까 오히려 도움받은 거죠"
백두산 군은 알찬 커리큘럼도 소중하지만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돌아볼 기회를 얻은 것, 의지하고 지낼 선후배와 친구들을 가장 큰 수확으로 생각한다. "사교육에 물들지 않아서 좋고 서로 끈끈하게 지켜주는 우정이 있어서 기뻐요" "1:1 매칭 선배가 있고 마주 보는 방이 매칭방이라 잘 지내요. 1달에 1번 빼고는 주말엔 기숙사에서 공부하고 애들이랑 원주로 원정 가기도 하고 휴게소에서 가락 국수도 사먹구요"
그는 대학원에서 공학과 접목시킬 수 있는 경영학이나 교육학을 배우고 싶다. "공학이 학문적으로만 머무는게 아니라 사회에 이바지 하려면 경영 전략적인 마인드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예요" 교육학을 배우려는 까닭은 고민 상담을 하면서 능력이 있는 인재를 바르게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배운 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고 모두에게 플러스(+)가 되고 싶어요"
◆서울대 생명과학과 합격한 왕가온소래 양
가운뎃소리, 중심이 되는 소리라는 뜻을 가진 이름의 왕가온소래 양은 생물 과목 하나에 `올인`했다. 수강신청 제도 덕분에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민족반이긴 했지만 생물을 심화(in-depth) 과정으로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들을 수 있거든요. 이런 과목 듣고 싶은데 개설해줬으면 좋겠다고 하면 선생님께서 강좌를 열어주세요" 민사고 과정 중에 특별히 갖춰진 IR(Individual Research) 시간을 적극 활용한 결과였다. 생물의 경우는 4~5명, 영화 감상과 비판적 글쓰기도 학생들의 요청으로 20명 정원으로 열렸다.
11학년(고 2)때도 입시 위주로 공부한 것은 아니었다. 세계 지리나 AP Chemistry 등도 자유롭게 신청해서 수강했다. 12학년에 가서는 경시대회와 수시모집, 수능공부를 병행했다. 면접 준비도 같은 목표를 가진 친구들과 짝을 이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수학은 선생님 2분이 번갈아가면서 실전 면접 준비를 해주셨다. 일본 공대 입학 문제나 서울대 신입생들이 보는 학력 평가 문제 중 어려운 문제를 한 시간에 2~3개씩 몇 분 정도 칠판에 직접 나와서 풀어봤다. 아이들과 선생님이 면접 보는 교수님 역할을 했다. 추가 질문에 대응하는 모의 면접을 수 차례 치뤘다. 왕 양은 10월 중에 본 카이스트와 연세대, 11월 말에 본 서울대 3개 대학에 모두 붙었다. 같이 공부한 친구들도 모두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는 쾌거를 이뤘다. 생물 공부가 너무 좋아 동아리도 `metamorphosis`(변이)라는 생물 동아리를 들었다는 왕 양의 목소리는 생물 이야기를 하는 내내 들떠 있었다. "애벌레에서 나비가 되는 과정을 이를 때 흔히 이 말을 써요" 그녀는 "작년 여름 민족제(교내 축제)때 환경에 관련된 독립 영화 상영회를 열었던 것이 학창 시절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될 것 같다"며 "원하는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재량권이 주어져서 한없이 행복했다"고 말했다.
[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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